안녕하십니까? 연세대 독문과에 재직 중인 김 병옥입니다. 새 학기를 맞이하여 연구와 강의준비에 바쁘실 줄 아오나, 선생님의 귀중한 시간을 잠깐 동안만 할애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제가 오래 전부터 뜻을 두어온 공익사업을 구체화하기 위해 그동안 재단법인으로서의 "한독문학번역연구소" 설립을 추진해 오던 중, 금년 7월 13일에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로부터 설립인가를 받게 되었으며, 지난 7월 28일에는 법원등기도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 연구소의 설립취지와 앞으로의 시행사업에 대해서는 동봉해 드리는 유인물을 보시면 아시겠기에 여기서 따로 설명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 연구소 설립을 구상함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동기로 작용한 것은 1945년에 영점에서 출발하다시피 하여 그동안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한 우리 독문학이 이제는 그 필수적인 기초분야인 "번역"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고 연구하여 이를 토대로 실제적인 번역문제들에 대해 조직적이고 과학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이것은 "외국문학으로서의 독문학"(Auslandsgermanistik)의 본연의 임무와도 깊이 관계된다고 봅니다. 즉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한국 독문학"의 위상을 정립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작업은 역사적 배경, 특히 개화기에 일어난 중역과 모방의 전통을 생각할 때, 우리 겨레의 자주성과 문화적 긍지의 창달이라는 심오한 과제를 안고 있음이 명백해집니다. 이토록 크고 어려운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내외 학술기관과의 유기적인 상호협조체제를 유지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공신력을 갖춘 법인의 설립의 당위성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한편 이러한 공동체의식에서 출발하는 이 연구소의 목적사업이 여러 선생님들의 연구활동과도 이모저모로 관련된다고 사료됩니다. 따라서 저는 여러 선생님들께서 여기에 동참해 주시고 성원해 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재단법인은 출연자가 의도하는 사업의 공익성이 국가기관에 의해 인정되어 그 설립이 허가되는 한편, 운영에 있어서는 계속 주무관청의 감독을 받는 공익법인입니다. 앞으로 저는 연구소 일을 수행함에 있어 재단법인정관을 항상 명심하고 그 곳에 명시된 공익을 최우선으로 삼겠사오며, 특정 학교나 특정 개인에 치우침이 없이 언제나 공정하게 일해 나갈 생각이오니, 부디 기탄없는 충고를 아끼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사로 모신 분들 중에 독문학에 종사하시는 분은 하이디 강 교수(한국외대), 고 위공 교수(홍익대) 안 삼환 교수(서울대) 등 세 분입니다. 선생님께서 혹시 저와 직접 친교가 없으시더라도 이 분들 중의 한 분과 우리 연구소의 일에 대해 말씀을 나누시고 서로 협력 가능성을 모색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여러가지 목적사업을 수행할 예정입니다만, 먼저 제 1차 사업으로서는 오는 10월 17일(토)에 홍익대에서 "한독 문화교류와 번역의 문제"라는 제목으로 학술세미나를 열 계획으로 있습니다. 근일 중 별도로 초청장을 우송해 드리겠습니다만, 아무쪼록 우리 독문학도 공동의 일로 생각해 주시고 많이 성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생님의 따듯한 성원과 가차없는 질정을 기다리면서, 오늘은 우선 이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선생님의 가정에 만복이 깃들고 학문의 길에도 큰 성과 있으시기를 빌겠습니다.
1992년 9월 3일
김 병옥 올림